2020. 10. 9.

1번 마을버스

내가 11살 때 일이다. 나는 당시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살고 있었고 주말에는 광명시 소하2동에 있는 할머니 집엘 갔다. 388을 집 앞에서 타면 기아자동차 공장 부근 정류장까지 한 시간 좀 더 걸렸다. 거기서 1번 마을버스를 타면 할머니 집 앞에 곧바로 도착했다.


하루는 가는 길에 비가 갑자기 엄청나게 쏟아졌다. 갑작스런 비였기에 우산도 없었다. 7살 동생의 고사리 같은 손을 잡고 인적 드문 기아차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마을버스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날은 평소보다 마을버스가 훨씬 더 늦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마을버스에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이 가득했고 오늘은 버스가 안 오는건가 비가 이렇게 많이 오는데 어떡하지 오만 생각을 다 하면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거의 4,50분은 족히 기다리고 있던 중 드디어 쏟아지는 빗줄기 너머로 저 멀리서 마을버스가 오는 게 보였다. 나는 동생 손을 꼭 잡은 채 버스 정류장에서 혹여 기사 아저씨가 못 보고 지나칠까봐 미친 듯이 팔을 흔들어댔다.

그런데 마을버스는 속도를 줄일 기미를 전혀 보이지 않았고 정류장 앞 물웅덩이의 물을 흩뿌리며 우릴 그대로 지나쳤다.

나는 동생 손을 잡고 뛰었다. 지금 마을버스를 놓치면 언제 또 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 쏟아지는 비를 온몸에 맞으면서 버스를 뒤쫓아 전력질주했다.

한참을 그렇게 달리니 마을버스가 멈추고 문을 열었다. 동생을 데리고 비를 쫄딱 맞은 채 버스 계단을 올라서는데 버스 기사 아저씨가 화를 내며 그냥 다음 버스 탈 것이지 왜 쫓아오냐고 소릴 질렀다.

마을버스 안은 사람들로 꽉 차 있었고 우리는 겨우 비집고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할머니 집까지 겨우 겨우 갔었다.



20대에 지역신문 기자가 된 지 얼마 안 됐을 때 마을버스가 너무 제 시간에 안온다는 항의성 제보를 받았다. 제 때 안오는 마을버스 때문에 출근 길에 낭패를 본다는 이야기였다.

마을버스 회사를 찾아갔는데 외진 곳 공터에 마을버스 몇 대가 주차되어 있었고 한 켠에 컨테이너 사무실이 있었다. 버스회사 사장님은 1번 마을버스 경로에 불법주차된 차량들 때문에 정체가 일어나 제 시간을 맞추기 어렵다고 항변했다.

LH아파트를 관통하는 다른 마을버스는 항의도 곧잘 들어오고 불법 주차도 없고 해서 제 때 가게 되는 편인데 1번 버스 쪽은 그렇지 않다고 했었다.

당시 담당공무원은 마을버스 재정상태가 열악해 추가 배차도 어렵다고 했고 주민들의 이해를 바란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며 버스회사 편을 들었다.



그 후로 거의 10년이 지난 최근. 개운 아파트 앞 놀이터 지하를 공사해 주차장으로 만들었다. 그런데 관리상의 문제 때문에 주민 그 누구도 이용하지 못한 채 오랫동안 방치되고 있다. 불법 주차문제는 여전히 그대로다.


소하2동은 광명시 행정동 중 지하철역과 가장 거리가 먼 지역이다. 광명동은 광명사거리역이 있고, 철산동은 철산역, 하안동은 독산역, 소하1동은 금천구청역이 바로 근처다. 하지만 소하2동은 석수역과 거리가 멀어 반드시 마을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이언주 의원 시절 지하철 역을 유치한다며 진로마트 앞 소하삼거리에 소하역을 짓는 방안을 용역검토했는데 차량기지로의 노선에 회전각이 안나오고 비용편익이 떨어진다며 무산됐다.

그리곤 가리대사거리역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가 이언주 의원이 탈당하면서 결국 흐지부지. 지금은 지하철 차량기지 반대 쪽으로 여론이 모여 결국 소하2동은 지하철과 멀어지게 됐다.


이러나 저러나 마을버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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